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짜 이강석 사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1957년]], 이승만 前 대통령의 [[입양]]한 양아들인 '''[[이강석(1937)|이강석]]'''을 사칭한 웃지 못할 사건으로, 한국판 [[가짜 드미트리]]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. 다만, 이 쪽은 왕자를 사칭하여 내전이라는 대형사고까지 일으킨 데 비해, 이강석 사건은 [[무전취식]]과 행패의 반복 정도로 그친 작은 소동이었다. 소위 해프닝인데 그래서 처벌 수위도 가벼운 편이었다. 이강석은 원래 [[이기붕]]의 아들이었는데, 이기붕은 아들이 일찍 죽어 없던[* [[영부인]] [[프란체스카 도너]]와 [[재혼]]하기 전의 전처와의 사이에서 이봉수라는 아들 하나만을 두었으나 아들이 10살 무렵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, 프란체스카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얻지 못했다.] [[이승만]] 사후의 후계 구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이승만의 [[양자(가족)|양자]]로 입적시켰다. 1957년 3월 26일, 이승만의 82번째 [[생일]]에 양자 선언이 이루어졌다. 사실 이것은 '장자는 다른 집 양자로 갈 수 없다'는 당시 [[민법]]을 어긴 것이었다.[* 이 조항은 1990년 삭제된다.] 게다가 이승만은 [[양녕대군]]파였고, 이기붕은 [[효령대군]]파인데다가 항렬도 아들뻘이 아니라 손자뻘[* 같은 [[이방원]] 기준으로 이승만은 17세손, 이기붕은 19세손이 된다. 이승만에게 이강석은 증손주뻘인데 이런 촌수를 양아들로 삼은 것이다. 결국 아들이 아버지의 의붓 숙부가 되는 셈이다.]이라 [[족보]]까지 꼬이게 되는데,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추진한 것이었으며, 세간에서는 이기붕이 자식을 팔아 출세하려 한다고 말이 많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